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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세계75]

[은혜의 세계75]

  • 기자명 안병국 회장
  • 입력 2015.07.2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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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 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2:25)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기준과는 너무나 다른 하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 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을 대하면 내가 무엇인가를 행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행하면 마음이 편하고 내가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을 행하면 마음 한구석이 찜찜합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성경을 대하다 보면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왜 성경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의 예를 들면서, 골리앗을 이긴 다윗이나, 사자 굴에 들어가서 살아 나온 다니엘을 이야 기하지 않고,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을 예로 들었을까? 너무 궁금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아내를 두 번이나 팔아먹었지만, 성경은 그런 아브라함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의 조상으로 내세웠습니다. 무엇 때문일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아주 귀하고 귀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주저 없이 번제로 드리려고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 까.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창세기 22:17) 이 약속을 믿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자기가 가장 아끼는 유일한 아들을 드릴 수가 없었구나.

기생 라합은 고결한 삶을 산 아녀자가 아니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한낱 창녀에 불과했다. 왜 그런 그를 믿음을 행하는 사람의 표본으로 삼았을까? 그가 한일은 단지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왔을 때 숨겨준 것 밖에는 없는 데. 다른 말로 하면, 적국의 간첩을 숨겨주었기에 자기나라의 입장에서는 반역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의로운 행동과는 전혀 반대되는 행동을 한 술집 여주 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라합의 마음을 지배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라 (여호수아 2:11)

이 하나님을 대적하면 우리 가족이 모두 멸망당하겠구나 하는 판단이 라합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속한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 주었고 그런 라합은 믿음으로 행했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 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보면, 그가 가진 가장 귀한 아들을 그 마음에서 내려 놓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들일 수가 있었고, 기생 라합의 마음에 상천하지에 하나님으로 자리 잡으니 그가 지금까지 옳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을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내 좋은 마음으로 자선을 베풀고 무엇을 행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시는 약속을 따라가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웃음을 팔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비천한 신분의 기생 라합은 그 마음에 상천하지에 하나님이 자리 잡았기에, 그 믿음이 목숨을 걸고 정탐꾼을 영접할 수 있었으며, 그의 모든 가족을 구원할 수 있었으며, 후에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귀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가 박해 받던 중세시절, 한 귀족의 딸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당시 귀족 가문에서는 이교도에 빠진 것을 수치로 여겼기에 아버지는 딸을 회유했습니다. 무엇이 부족해서 네가 거기에 빠졌느냐, 제발 돌아오라 그러면 부와 명예가 있는 데, 왜 굳이 남들이 수치로 여기는 것을 왜 하필이면 네가 그러고 있니. 그러나, 딸은 십자가에서 자기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릴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누렸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어찌 보면, 이름을 알 수 없는 귀족 가문의 이 처녀도 그가 귀하게 여겼던 것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하나님을 영접할 수 있었던 것은 믿음으로 행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의지로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행하는 것은 내 행위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좋은 것들을 버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을 따라가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하나님은 믿음으로 행했다고 말씀합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자기 보기에 선한 것을 좇아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셨을 때, 예수님 양쪽에 살인 강도 두 명도 매달려 있습니다. 그들은 살아 생전에 악만 행하다가 결국은 십자가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로마군병들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처럼 우리 옆에 매달린 예수도 우리와 같이 살인죄를 지어서 매달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희롱하는 저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는 예수의 기도를 들으면서 저 분은 나의 죄 때문에 나를 대신해서 매달렸구나. 그리고 그 중 한 강도는 예수님에게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42,43)

내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이 믿음으로 말씀을 받아 들이는 세계, 이것이 바로 은혜의 세계입니다.♣

(주)안국 E & C 안병국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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